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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회 신앙/오늘의 축일

[3월 11일] 성 소프로니오스 예루살렘의 총대주교

Ὁ Ἅγιος Σωφρόνιος Πατριάρχης Ἱεροσολύμων

성 소프로니오스 예루살렘의 총대주교 (3월 11일)


수사학 교수

성인은 550년경 다마스커스에서 태어났다. 보기 드문 지적 재능과 시인적 자질을 지녔던 성인은 공부를 다 마친 뒤 ‘소피스트’(수사학 교수)라는 칭호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세속 학문에 만족할 수 없었던 그는 더 완전한 학문을 찾아 팔레스틴으로 순례여행을 떠났으며, 그곳에서 여러 성소(聖所)를 순례하고 수도원과 사막에 살고 있는 고행자들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테오도시오스 성인이 세운 수도원에 도착한 성인은 영적인 형제 요한 모스쿠스(John Moschus)를 만나게 된다. 578년 이미 수도자가 된 요한 형제와 함께 알렉산드리아에 간 성인은 마침내 헛된 인간적 지혜를 더 이상 찾지 않기로 결심하고 다시 팔레스틴으로 돌아와 수도자가 된다.

 

선교의 사명을 다함

10년 뒤, 다시 요한 형제와 함께 이집트 사막을 가로질러 영적인 깨달음을 구하는 여행을 한 그는 603년경 페르시아의 침입을 보면서 알렉산드리아로 돌아와 뛰어난 웅변술과 신학적인 지식을 활용하여 총대주교를 도와 일하였다. 알렉산드리아의 정교회 수(數)를 10배나 더 늘리고 많은 마을과 수도원들이 정교회로 되돌아오게 한 성인은 선교여행을 통하여, 오늘날 우리들에게 전해진 당시의 종교적인 삶에 관한 이야기들을 수집했다. 614년 예루살렘이 페르시아인들의 손에 넘어가자 성인은 요한 형제와 함께 로마로 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곳에서 요한 형제가 안식하자 그의 시신을 성 테오도시오스 수도원으로 옮겨와 묻고, 그곳에 머무르면서 ‘이집트의 성녀 마리아’(4월 1일)의 생애에 관한 기록들을 정리하였다. 

 

일생을 마지막 날처럼 살다

627년 아랍인들의 침입을 피해 북아프리카로 피신했던 그는 뒤에 이집트로 돌아와 이단자들에 맞서서 참된 진리를 위해 싸운다. 이런 사명을 다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곧바로 당시 안식한 총대주교의 뒤를 이어 그곳 교회의 최고위직을 이어받게 된다. 총대주교로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올바른 신앙고백을 로마와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들에게 써 보냈던 성인은 전생애를 통해 외적의 침략을 겪는 고통을 겪고, 끝내 638년 초 성도(聖都) 예루살렘이 아랍 침입자들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지켜본 다음 같은 해 3월 11일 안식하였다.